대강백 백운 스님 영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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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백 백운 스님 영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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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6.24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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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백양사 문도장 장의위원회  6월22일 백양사에서 지흥당 백운대종사 문도장으로 봉행

6월22일 백양사 연화대서 다비 엄수

구례화엄사를 비롯해 범어사, 송광사 등에 후학을 지도해 온 대강백 지흥당 백운 스님의 영결식이 장성 백양사에서 엄수됐다.

영결식에는 원로의원 암도 스님을 비롯해 해인사 주지 현응, 월정사 주지 정념, 화엄사 주지 덕문, 송광사 주지 자공, 대흥사 주지 법상, 봉은사 주지 원명 스님과 전국비구니회 수석부회장 현정, 전국비구니회 부회장 성본, 민족공동체추진본부장 원택, 교육원 교육부장 진광, 교육원 불학연구소장 정운 스님 등이 참석했다.

범어사 원로 흥교 스님은 영결사에서 “스님께서는 부처님의 경전을 공부하시면서 후학들을 가르치셨다”며 “스님께서 겪으셨을 수많은 수행의 여정을 생각해보니 결코 순탄하지도 편안하지도 않으셨을 것이지만 항상 밝은 모습으로 조희들을 이끌어주신 점에 대해 정말 감사드린다”고 스님에 대한 애틋함을 전했다.

백양사 원로 성오 스님은 추도사를 통해 “대강백으로서 제방에서 제자를 양성하셨으니 스님의 일평생 삶은 주로 승가 교육에 매진하셨다고 할 것”이라며 “역대 한국 고승들의 법어집과 일대기를 집필하여 불교와 역대 선사들을 현창하는데 뛰어난 역학을 펼치셨다”고 스님의 업적을 기렸다.

범어사 주지 경선 스님도 조사를 통해 “만암대종사와 서옹대종사의 절대본연의 참사람 무위진인의 가르침이 살아 숨쉬는 백양사 도량에서 지흥당 백운 큰스님을 추모하며 가고 옴이 없는 진리의 자리를 설파하신 스님의 가르침을 되새겨 본다”며 “부디 진리의 자리에만 머물지 마시고 중생들을 위해 자비심을 베푸시어 사바세계에 속히 현현 하소서”라고 그리움을 전했다.

백양사 주지 무공 스님도 “교학의 장광설로 해탈의 문을 넓히셨던 그 사자후가 아직도 쟁쟁한지라 스님이 입적하여 이룩한 무형무상한 무위진인의 자리고 너무 깊고 깊어서 적막하다”며 “큰스님께서는 범어사와 화엄사 대도량에서 대강백으로서 후학을 정법안장의 길로 이끄셨으니 그 법문의 향기가 사해에 진동하였다”고 스님을 추모했다.

문도대표 진우 스님은 “참석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며 “어려운 시국에도 영결식에 참석해주신 사부대중의 뜻을 받들고 선교를 두루 강조하셨던 은사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정진하겠다”고 다짐했다.

영결식 후 스님의 법체와 만장 행렬은 영결식장을 출발해 백양사 연화대로 이운됐다. 스님의 법체는 전통 방식의 연화대에 안치된 후 사부대중의 “불 들어갑니다”라는 외침과 함께 지수화풍으로 돌아갔다.

백운 스님은 1934년 전남 장성군에서 태어났다.

스님은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만암 대종사와 용성 대종사의 약속에 따라 범어사 강사로 있던 석산 스님을 백양사로 오게 하는 대신, 1952년 범어사로 보내져 동산 대종사의 상좌로 입실했다. 동산 대종사를 3년여 간 시봉한 뒤 범어사 강원을 거쳐 1955년 통도사 강원을 나왔으며 1958년에는 해인사 강원의 전신인 마산대학에서 월운, 지관 스님과 함께 수학하기도 했다.

불교경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안목은 스님이 20대 후반부터 강사로 활동하게 된 배경이 됐다. 1971~1977년 구례 화엄사 강주를 역임했고, 이어 1979년까지 부산 범어사 강주를 맡았다. 이후 1980년 구산 대종사의 요청에 따라 송광사에 강원을 개설했으며, 이후 1982~1988년 범어사 강주를 다시 맡아 후학들을 지도했다.

담양 용흥사에 주석하며 정진하던 중 6월19일 세연을 다하고 원적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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